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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듣고,읽고/책,그림,소리,

아름다운 초콜렛 소녀.

오랜만에 하는 그림 이야기.

드레스덴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와글와글 모여있는 Gemäldegalerie Alte Meister가 있고,
그 중 제일 유명한 라파엘의 시스틴의 성모상은 지난번에 잠깐 소개를 했다. 
2층에 있는  성모의 그림을 보고, 다니다가
맨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면  많이 지친다. 

다리도 아프고,
어째서 이 집은 이리 크단 말이냐.. 라는 생각을 하게되고, 
그만 보고 나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스믈스믈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이 미술관의 큐레이터는 그런 관객들의 마음을 이용하여
중간에 나가 버리면 엄청 후회할 일을 만들어 놓았으니...



이 그림속의 아름다운소녀. 
미술관의 맨 꼭대기 층, 맨 안 쪽 방, 맨 안 쪽 벽에 계신다.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

18세기,로코코시대. 
프랑스 혁명 직전시대 유럽의 늘어질대로 늘어진 귀족들이 
유령들같이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렇고 그런 초상들이빼곡히 들어찬 붉은 색의 커다란 방의 정면 한 가운데, 
그들을 지배하는 듯이 서 있는,
바로  장 에티엔 리오타르가 그린
Schokoladen Maedchen,
초콜렛을 든( 나르는) 소녀이다.

그녀의 복장을 보면 아마도 하녀일테고,
어쩌면  이 방에 같이 있는귀족 중의  한 명을 시중들었을지도 모를 일.
 
그림을 들여다보면 파스텔화 특유의 우아한 색감과,
엄청난 기교로 표현한 그녀의 사랑스럽고, 고집이 센 듯한 표정이 너무나 생동감 있다.
살짝 발그레한 볼이라던지,
그 당시에 먹는 것으로는 최고의 사치품 중의 하나였던
초콜렛이 담긴 쟁반을 조심스레 들고있는 손의 모양,
그리고 한 쪽만 살짝 보여주는 발 등이 정말로 매혹적이어서
다리가 아픈탓도 있었지만,
의자에 앉아 한 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그림들을 보았지만,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 처음이다.


그림을 그린 Jean-Étienne Liotard 는 18세기 스위스 출신의 화가. 
그는 특히 파스텔화를 잘 그려서 위의 초콜렛 소녀 역시 파스텔로 그린 그림이다.


그는 젊은시절 로마로, 나폴리로, 이스탄불로 떠돌며, 자신의 기술과 감성을 연마했고, 
유럽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그림과 특이한 행동, 기이한 행색으로 귀족들의 사랑을 받았다. 
궁정화가로도 활동했고, 귀족의 초상을  특히 많이 그렸다.
아마도 자신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편안하고 우아한 인생을 살았으리라. 

위의 그림은 그런 그의 성향이 반영된 듯 이국적인 복색을 한 자신을 그린  자화상으로,  
초콜렛 소녀와  마주보듯  바로 옆에 걸려있다. ^^ 

마치 그가 손에 든 파스텔로 
막 초콜렛소녀의 그림을 완성하고 만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것 같다.  
이런 그림을 그린 리오타르에게 박수 박수...
그리고
드레스덴 미술관의 큐레이터 분들의 센스에 박수를.. 
사진을찍어 그 방의 분위기를 이웃 들에게 보여드릴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 ^^;;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림들이 다 중요하긴 하겠지만,
미술품은 평등하지 않으므로,
사람들의 사랑을 더 받는 그림이 있고, 미술사 적으로 더 중요한 그림들이 분명히 있다.
이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은 그런 조금 더 아름다운.. (?) 그림들을
어떤 식으로 티나지 않게 돋보이게 할지를 잘 알고 있는
센스만땅의 소유자들로,
유령같은 귀족들 사이에 생기만점인 하녀의 그림.. ㅎ
말고도 다른 식으로 여러 걸작들을 빛나게 하신다. 
중요한 그림이라고 가운데 모셔놓고 금테두리 두르는 것이 다는 아닌것이다. ^^

이 그림은 60년대인가 미국의 코코아 회사의 상표로 이용되어 유명해 지기도 했고,
지금도 드레스덴에 가면 여기저기에 등장 하는데,
그 중에 작센의 Erzgebirge 지방의 명물 목공예품 인형으로도 재현된것을 보았으니,


ㅎㅎ 사랑스럽다.

아름다운 그림은 백가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법.
이런 그림을 본 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