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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즐기기/독일에서 생긴일.

독일의 정치인


어제 독일의 대통령인 호르스트 쾰러가 사임했다.
발표와 동시에 효력을 가지는 사임이다.
독일 역사 사상초유의 사건.
메르켈 수상도 사임발표 두 시간전에 전화로 통보 받았다고 하니,
폭탄이 좀 쎄다.

이유인즉슨
이 분이 지난 21일에 아프가니스탄에 파병 되어있는 독일 군부대를  방문하고,
헬기에서 가진 라디오 인터뷰에서
"독일처럼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예를 들어 자유무역 루트를 지키고
무역, 고용, 수입에서 우리의 기회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지역 불안정을 막기 위해,
긴급 시 군사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라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뉴스들을 보니 아프가니스탄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 처럼 기사들이 났는데,
뉴스에서 다시 한 번 들려준 쾰러의 인터뷰에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언급 없이 군사적인 지원. 이라는 단어를 썼다.

어쨌건, 양반이 갓끈을  단단히 잘못 고쳐매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오는길에 그 따위 인터뷰를 했으니,
독일사회가 난리가 났다.
독일 사람들, 2차 대전때 저지른 일 땜에
아직도 어디가서 군인, 전쟁 그런 이야기 잘 들 못한다.
하면 거의 미친넘 취급 받기 쉽다.
근데, 대통령님이  돈 벌기 위해서라면 독일 군인들을 어디건 보내겠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해버렸으니..
그건 아프가니스탄 얘기가  아니고,
소말리아 해적 소탕 작전 같은데 보내는 파병지원을 이야기 한다고 해명해도 안 통한다.
얼마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인 애들 몇명 죽기도 했다.

여튼 열흘 동안 얼마나 당했던지,
이 아저씨 얼굴이 핼쑥해져서 사임발표를 하는데,
사람들이 자신에게 퍼부은 비난은 십원어치의 인간적인 존중이 담겨 있지 않았다는 말을 하신다.
야당 에서는..
정치인이면 크리틱도 들을줄 알아야 한다 부터
저는 남을 비난 하면서 자신을 향한 비난은 못 참아 넘기는 것이 안타깝다 둥둥의 표현을 한다.
뭐 잡을 생각들도  없지만, 좀 귀찮아 하는 눈치이긴 하다.
요새 그리스야  이스라엘이야 이래저래 정신 없는 참인데 말이다.

수상이  정부 수반인 관계로
독일의 대통령은 영국의 여왕 정도의 핫바지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한데,
나치를 통해  독점권력의 폐해를 잘 알고 있는 독일법의 최우선은 늘 권력의 분산이라.
대통령은 유사시에 수상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
그래도 사실 모든일은 수상이 하니,
이 아저씨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좀 김이 새서 그런것 아니냐는 말도 있긴 하다.
그래도 쾰러 같은 경우에는 나름 국민들에게 인기도 좋아서
작년에 재임선출 되었는데,
어쨌든 아저씨는 이제부터 연금생활자 이신 것이다.
뭐 덕분에 뜬금없이  이달 말에 대통령 선거하게 생겼다.
월드컵축구 독일경기 없는 날로 6월 30일 낙점 되었다. ^^;;

독일에 온지 꽤 오랜 세월이 지는데,
맨 처음 독일에 왔을 때 보이던 정치인들은 요즘 티비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교체가 빠르다.
반면에 한국은  그 긴 세월이 지나도
그때 그 분들이신데, 어떤 분은 늙지도 않으신다.
난 어려서는 교수와 정치가는 죽을 때까지 해야만 하는 직업인줄 알았다.
근데, 독일에 오니,
다니던 학교의 종신 교수중에 하나는
어린 자식들과 보낼 시간이 부족하다며 때려치고,
어떤 정당의 총재는 부인이 암에 걸려 간병하기 위해 정치를 때려 친다고 하고선 관둬버렸다.
마누라 낫고 다시 오시기는 했지만,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허긴 언젠가는 장관이  출장 다니면서 모은 마일리지로 개인휴가 갔다고 개박살 나고 쫓겨난 적도 있긴 하다.
으음....

사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
뭣이든 서슴지 않고 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적인 한국에서 태어난 나는 ,
뭐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군인들 좀 보내지 뭐.. 그런 말을 했다고, 비난이 빗발 치는것도 좀 생소하고,
(왠지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말 같은데 말이다.. )
그렇게 난리가 난다고  나 안해! 하고 그 자리에서 대통령이 물러서는 것은 더더욱  황당하다.

사임 발표를 하는 쾰러는 자신을 향한 비난에 상처를 엄청 입으신듯 했다.
그래도 오해건 실언이건 길게 구차한 모습 보이지 않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모습은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한국은 내일이 선거라 인터넷 포탈이건, 어디건 번쩍번쩍 시끌시끌 하다.
친구말로는 선거운동차량 때문에 시끄러워 창문을 열 수조차 없다고 한다.
역시 저번에 저저번에 그리고 또 저저저번에 뵜던 그분들의 얼굴이
여기저기 보이는데,
수퍼맨이, 축구선수가 그분들의 얼굴을 달고,
자신 만이 모든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우겨댄다. 
선거 전과 후에 다른 모습을 보이는 데에도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고,
그 자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칠 기세다.

정치인은 염치가 있고 부끄러운줄 알며 자존심이 있는 인간이면 되는것인데,  
우리나라에서 그런 정치인이 되는 것보다
수퍼맨이 되는 것이 어쩌면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선진국은 돈이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사는 집이다.Schloss Bell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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