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고,듣고,읽고/드라마,영화

일본드라마 역로 (驛路)


어려서부터 마쓰모도 세이죠나 모리무라 세이이치 같은 일본 추리 작가들의 책을 제법구해 읽었다.
워낙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탓도 있었고,
필립 말로우나 에르퀼 포와로 같은 먼 나라 수퍼맨 형의 탐정 스토리보다는 
왠지 생활과 끈적하게 들러붙어 요상하게 현실적인 그들의 소설에 훨씬 매력을 느꼈던 탓도 있겠다. 

그래도 그중에 마쓰모토 세이조가 더 내 맘에는 들어서, 
책도 책이지만, 구할 수 있는 단편드라마나 영화는 대충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이다.
그도 그럴것이, 그의 원작이라면 구성이 탄탄하여 드라마가 재미없을리는 없기 때문인데,
올해는 그 중에서도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많은 드라마가 제작되었다. 

그 중 하나인 역로는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와 후카츠 에리가 주연을 맡아
절정의 연기를 보여준다.




평생을 건실한 가장이자 은행원으로 살았던 코즈카 라는 남자가 은퇴후 취미인 사진활영여행을 홀로 떠나겠다고 집을 나선 후 
한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자 아내는 실종신고를 한다. 
실종 신고를 받고 수사를 하는 형사 요부노는 은행원의 행적을 조사하고  그에게 불륜의 상대 케이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불륜의 이야기 이다.
그러나..

전후 세대로 평생을 성실과 의무감으로 살아온 한 남자가 다 늦게 인생의 빛을  찾아,
정년후 자신의 아내에게 가진 모든것을 다 넘기고 기차의 선로를 바꾸듯
자신은 그 여인과  다른 여생을 보내고 싶어하는 마지막 바램을 
역시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타히티로 가서 살았던 화가 고갱에 투영하여 보여주는 것이라던지,

외롭게 홀로 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지만, 
그가 과연 자신을 위해 가정을 버릴지,
자신이 과연 그를 위해 평범한 여자로서의  행복을 을 포기하고 살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마지막 약속에 나가지 않았던 여자의 불안함과 그로인해 그를 잃게된 후회,

그리고수사 과정 중 둘에 대해 알아가면서
동년배의 코즈카에게는 공감과 부러움을, 케이코에게는 역시 유부남을 비극적으로 사랑하다 마음의 병에 걸린 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는 형사의 회한이랄까 하는 것들이

화려한 고갱의 그림과, 주변인물들사이를 오가며 섬세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모든 사건이 종결 된 후  요부노의 마지막 말,

평범하고 기나긴 인생을 걸어가다
어느 역로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문득 말이야.... 문득...
지금까지 참아왔던 인생을 이쯤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
자기 생각대로의 여행으로 새로 고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
.
.

하지만 나는 아예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남은게 없어서 남은 인생을 참으면서 걸어가야만 한다고
죽을때까지 꾹 참고 살아야 된다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술을 마시며, 먼 말인지 절대 이해할리 없는 젊은 신참 형사 앞에서 하는 독백 장면인데,
왠지 그가 풍기는 생활과 술 냄새가 화면 바깥까지 나는 듯하다.
후카츠 에리 역시 내가 본 그녀의 연기 중 최고 였다 말 할수 있다.

독일에도 실종되는 가장의 수가 제법 많다고 한다.
많은 수가 아침에 담배사러 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인데.. ^^;;
그들은 어느날 갑자기 모든 굴레와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것일까..
그렇다고 한들. 얼마나 자유로와질 수 있을지 ..

인간이 혼자 살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 다른 관계를 만들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또 다른  굴레와 책임이 생기는것 아닌가.

누구나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인간 내면의 문제를
애정을 가지고  섬세하게 표현해 낸  드라마나 책들을 보면 
치유되지는 않더라도 살짝 위로받은 느낌이 든다.